씨밀레- 친구
군대동기 박성민부친상2013.8.7(음7.1) 해군180기 훈련소 동기회장인 성민부친 별세 소식을 접하고 사무실 일 서둘러 중간마무리하고 경기도 안성 두 시간 반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갔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낯익은 이름이 제3분양실에 걸려 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듯 "해군병180기 동기회" 의 조화도 입구 쪽에 놓여 있다. 조문객을 맞는 상주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몸보다 마음이 더 앞서는 병환간병으로 고단함과 슬픔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에 울컥한 마음으로 두 손을 꼭 잡았다. "애썼네~, 그 동안 마음고생 몸 고생 많이 했지?" 아버지를 여윈 애통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말은 건네지 않고 덜컥~, 옆에서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들었더라면~,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향년 여든 다섯,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분향 후, 몇 차례 동기모임 뒷 풀이에서 마주했던 큰 며느리(허여사)와 와병 중인 성민어머님과 누이에게도 목례를 건넸다. 120915 동기 권영갑 딸 결혼 & 121103 동기 박명규 딸 결혼 뒷 풀이 때 모습~ 불과 반 년 새 많이 수척해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서울 목동에서 반 년 가까이 주말부부로 큰며느리 몫을 톡톡히 치룬 모습이려니~. 먼저 와 있던 저끝 9소대의 자존심 신경주와 동기들~ 옆으로 돌려 구미에서 올라온 박교현 더 멀리 울산에서 온 허태갑~ 내 뒤에 박봉학 윤웅진이 그리고 오랜만에 노형래도 섰다. 금경섭 미얀마에서 때맞춘 정태영이 그 앞 제일 끝에 인천 박경철도 와 앉았다. 조금은 낯설은 성혜원 앞에서의 단체사진~ 단체사진에서 제 자리 못 찾았다며 상주와 함께선 권영갑~ "자네는 그래도 복이네~ 이 사람아~ 지금까지 아버지를 모셨으니, 나는 서른 일곱에 아버님을 여위었다네 아버님연세 일흔 여섯에~" 【문득, 내리 딸 둘을 낳고 1990년 5년 터울로 아들을 봤을 때, 불편한 몸으로 지팡이 짚고서 전주까지 가셔서 거금 3만 원을 지불하고 작명가에게 지어오신 이름 "김기욱(錤昱)"....그 해 88년형 액셀승용차, "니 차냐? 참 좋다...조심해서 타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좋아하셨던 우리 아버지, 그리고 3년~, 딱 석 달만 더 사셨어도 13평 게딱지 임대아파트에서 32평 널찍한 아파트 거실에서 함박미소를 지으셨을 텐데~, 3년만 더 사셨어도 승진고시 상무시험합격에 활짝 웃는 얼굴 보여 주셨을 텐데~, 요즘 밥 먹다가도 떠나는 중국이나 동남아여행 비행기 한 번 태워 드리지 못하고 그렇게 보내 드려야 했던 아버지에게 죄스런 마음이 불현듯 목을 메이게 한다~.】 일부 동기들 총총히 자리를 떠날 때 밤11시 다돼 부산에서 일 마무리 다 못하고 달려왔다는 김기수. 늦게까지 남아있는 동기 몇을 등뒤로 하고 왔던 길 되돌아 다소 두려운(?=쐬주) 새벽 가르는 운전대를 잡았다(*) 2013.8.8일 18:30~23:00까지 내용으로 이전 후 조문한 동기와는 관련성이 없음~. **흐르는 곡: 김경호/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