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렁- 텃밭
정년퇴직 “어이! 지점장 일로와 앉아 봐~~ 다들 우리식구들인데 한 잔 허고 시작혀야지?“ 평소 정 줌이 많았던 김이사님 손짓에~ 여전히 난 참 속없는 인간... “원샷~~~” 먼저 외집스럽게 가보처럼 챙기고 있는 1980년11월 첫 월급 87천원으로 시작했던 그 때, 농협입사 후 처음 받았던 다음연도 농협노트와 뺏지입니다. 전체36권.. (잠깐 소개) ~답사~ 해를 거듭 할수록 봄을 상실한 무더운 여름날에 바쁜 일정의 임원님과 6월말 가 결산대비 업무마치고 귀한시간 할애 저의 정년퇴임식 참석과 그 준비로 애쓰신 임직원 모든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멀리 서울에서 제 큰 여식 산들이의 시부모이신 이00님과 황00님의 귀한 방문에 감사와 하나뿐인 누님부부 그리고 작년에 작고하신 형님을 대신한 장조카부부에게도 고맙다는 말 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임직원여러분! 저는 직장 운이 좋았던 사람으로 내 직장 농협을 통해 많은 혜택을 충분히 받으며 지난 35년8개월의 농협직장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3남매 자녀교육과 제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지금 살고 있는 집, 다 농협을 통해 이뤘고, 저기 고운 제 아내 또한 농협직장이 있었기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다들 어려웠던 시기에 12달30만원 사글셋방 세 번에 네 번 더 이사를 하며~, 농협을 핑계삼아 우리 고전적 민속놀이와 사람 좋아해 밖으로만 돌아 마음고생 미안한 일 많았던 제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단 말 주고 싶습니다. 사실 저 알고 보면 용기 없어 교향 떠나지 못했고 특별한 능력 없어 이직못했지만, 지나친 의욕은 자만과 잘난체하는 모습으로 농협입사 초반기를 보냈습니다. 내가 아니면 농협이 멈춰 설것 같은 착각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적당한 나이에 승진도하고 월급도 오르면서 대단한 자부심으로 26년을 겁 없이 달렸습니다. 그러다 10년 전인 2006년 6월, 저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도 갖는 경험도 있었습니다만, 최 말단 서기보로 시작해서 농협직원의 최고직급인 *급까지 올랐으니 여한없는 농협직원이었습니다. (송사 읽은 남 여 직원에게 격려, 사위와 둘째의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격려) 오늘 35년8월을 마감하며, 그동안 동료직원들께 업무와 일상에서 격려보다 뒤끝없단 허울로 말도 함부로 하고 벌컥벌컥 화도 잘 내고.. 그러지 말 걸~,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했던 시간마무리를 여러분께서는 퇴직선배들의 퍼즐판에 저를 어떤 색깔로 모자이크 하시렵니까? 다소 어두운 색깔이라면 제 사과의 말을 듣고 아주 조금만 밝은 색으로 바꿔 주시지 않으시련지요. ~ㅉㅉㅉ???!!!~ 사랑하는 임직원 여러분! 이제 농협 입사이후 단 한 번도 떼지 않았던, 심지어 외국 여행길에도 내 직장에 대한 자부심을 넘어 오기로 35년8월을 달고 다녔던 이 농협뺏지를 빼야하는 시점에서, 조합장님과 임원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직원들 53명 다 다른 개성과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 등 각자의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일곱 색이 조화롭게 결집 돼 찬란한 무지개를 피워내 듯, 직원전부 일색으로 몰지마시고 채찍에 앞서 격려주시고 응원해주신다면, 우리 신태인농협은 임원님들과 함께 어느 농협 못지않은 지역농업인과 고객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한 농협으로 그 역사를 계속해 갈 것입니다. 끝으로 임직원님과 가족모두 건승과 소원하는 일 모두 이룸의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바램하며, 저와 아내 자녀들까지 우리신태인농협만 이용하는 고객이 돼 살아가겠습니다. 또한 정든 신태인과 감곡들녘 오가며 여러분과 맺은 인연 결코 잊지 않을 것 입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내 삶을 돌이켜 볼 때도, 분명 내 인생 전부는 농협이었다 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한 시간들 참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