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시 오고싶지 않은 곳,
그래도 또 와야되는 곳..ㅠㅠ
아직 해는 서산에 머물고 있는데 아무도 없다..
같이 온 1977년 해군신병훈련소 동기는 아무말없이 담배 한 개피를 꺼내문다.
매서운 찬바람은 자꾸만 내 다촛점 안경 깊숙히 파고들며 끈적이는 눈물샘을 밀어낸다...
미쳐 챙겨가지 못한 뒷주머니 손수건을 더듬으며 미안하단 말 차마..
어떤표정 어떤자세도 취할 수 없는 죄인이었다.. 오늘 나는 너희들에게~.
2년 전 4월에 내 블로그에 올렸던 글,
어느날 군사기밀 운운하며 내 의사와 상관없이 막아버린 글 일부를 들춰 보게한다.
나의 군경력 함상생활 3년,
3년 내내 해군구조함(ARS-25:창원함)에서 78~79년 봄부터 가을까지 심해잠수사(SSU)와 신안앞 바다에서 유물인양작업을 했었다,
일병 때는 조수로 상병부터 병장까지는 단정(work-boat)장으로~, 그 기억의 얄팍한 상식으로...
그 날, 세월호의 선내방송,
"구명의 착용하고 그대로 대기하십시오, 선실이 안전합니다"
어떤 일인가 한 두 명만 선실밖으로 나와 봤어도,
함상생활 경험한 해군출신 한 두 명만 있었어도,
"이게 무슨 개소리 배가 기우는데, 다 나 따라 선상으로 나와~,
서로 서로 손잡고 바다로 뛰어내려~, 절대 잡은 손 놓지 말고~"
군함과 달리 여객선은 수밀문이 미비해 25도 정도만 기울어도 침몰을 예상했어야 했었다.
250여 명이 탈수있는 세월호의 해상탈출보트(4척)는 어차피 안 내려졌어도 괜찮았다.
갑판 좌우에 즐비한 45개의 구명정, 줄만 잡아당겨도 펼쳐지고, 수중 2~3m에서 자동분리 떠올라 펼쳐지는 구명플롯(구명벌)또한 정박 중 도난방지와 항해 중 파도와 태풍에 유실을 우려 줄로 꽁 꽁 묶어놓고 자물쇠를 잠궈뒀다해도 상관 없었다.
제발, 우리애들 라이프자켓(구명조끼)입은 그 상태 그대로 선실 밖으로 나오게만 했어도, 그냥 바닷물에 뛰어내리게만 했어도~,
4월 중순 얼음물도 아니었다, 태풍의 날도 아니었다.
신안 진도 그 쪽 조류가 심해 1~2Km 아니 3~4km쯤 둥 둥 떠내려갔어도 괜찮았다.
구명의 입고 서로서로 손잡고 바다 위에서 안전하게 다 구조 됐을 텐데~.
최소, 한 시간이상 탈출기회를 그렇게 놓쳤다.
바닷물이 차 오르는 선실에 우리 애들만 남겨 두고,
아니, "선실안이 안전하니 그대로 있으라" 는 말만 반복하며~,
선장놈 포함 갑판 기관원 등 선박직 모두 저희들만 오가는 통로를 통해 한 놈도 남지 않고 그놈들만 다 빠져 나왔다.
아무리 위급한 순간이었다 해도...
설마 설마 이럴수가~,
단연코, 그들은 인간의 모습이 아닌 바로 악마였다(*)
#2016.12.14. 밤12시14분 진도에서 페북에 쓴 글 옮김.